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밥에 고기국 기와집에서 비단옷 (문단 편집) == 개요 == >실로 [[1964년]]은 우리 인민의 생활 향상에서 새로운 거대한 전환의 해로 될 것입니다. 1964년에 우리는 300만 톤의 [[벼]]와 20만 톤의 [[육류]], 3억 메터의 [[섬유|직물]]을 생산하게 되며 그 해까지 [[도시]]와 [[농촌]]에 새로 건설되는 문화 주택은 60만 세대에 달하게 [[희망사항|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인민은 모두가 다 [[기와집]]에서 [[쌀밥|이밥]]에 [[육수|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근로자들이 오랜 옛날부터 꿈꾸어 오던 념원을 우리 시대에 와서 실현하는 무한히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문화어]]가 제정되기 전이라 [[띄어쓰기]] 등 표기법이 지금의 문화어와는 달랐다. 의존 명사도 붙여 쓰는 지금의 문화어와는 달리 당시에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조선 로동당 중앙 위원회''', '''최고 인민 회의''', '''조선 중앙 통신사''', '''김 일성 수상'''처럼 과도할 정도로 띄어쓰기를 많이 했다. 다만 당시에도 사이시옷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음은 동일하게 [이:바베 고기(ㄷ)꾹\]으로 한다.] >---- >{{{-1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의 당면 과업에 대하여"_1962년 10월 23일 [[최고인민회의|최고 인민 회의]] 제3기 제1차 회의에서 한 [[김일성]] 수상의 연설}}}[* "조선 중앙 년감 (1963년 판)", 조선중앙통신사, p. 29. 위의 인용문은 모두 1962년 당시의 북한 맞춤법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김일성]]이 1962년 [[천리마 운동]] 당시 선언했던 구호이다. 흔히 '''이팝'''으로 알려졌지만 당시의 원문을 보면 '''이밥'''이라고 적고 있다. 실제로 그 때나 지금이나 북한 맞춤법상으로도 '''이밥'''이 맞는 표기다. 실제 1962년 당시의 원문이나 2009, 2015년 기사에서도 '이밥'이라고 적고 있다. 이팝이라는 표기는 [[방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